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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묵상, 교회와 영적 우월감

  하나님의 은혜를 독점하려는 마음|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막을 때 요나서 4장은 한 선지자의 분노를 기록하지만, 그 분노의 뿌리에는 더 깊은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 4:2). 문제는 하나님을 몰랐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성품을 너무 잘 알았기에 니느웨로 가기를 거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 앗수르 사람들까지 용서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요나의 신앙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감사히 받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그 은혜를 받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너무 멀리 갔다”, “저런 삶을 살던 사람이 어떻게 교회에 올 수 있는가”, “우리와 생각이 다르니 하나님께서도 받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은혜를 교리로는 고백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내가 정한 경계 안에 가두고 싶은 것입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교회가 언제든 영적 우월감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선택은 특권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선택은 다른 민족을 배제하기 위한 근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약속하신 목적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창 12:3). 이스라엘은 복을 독점하는 저장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도록 부름받은 통로였습니다. 시내산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출 19:6).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함은 자기 의를 자랑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함과 긍휼을 드러내기 위한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

요나서 4장 전체 강해|나의 긍휼보다 크신 하나님의 긍휼

요나서 4장 전체 강해|나의 긍휼보다 하나님의 긍휼이 더 크다 서론|회개한 니느웨보다 더 완고한 선지자 요나서 4장은 매우 불편한 장으로 시작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듣고 금식하며 악한 길과 강포에서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보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요 3:10).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는 이 일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크게 싫어하고 분노합니다 (요 4:1).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애가 크신 분임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니느웨에 임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는 자기에게 베풀어진 구원은 감사했지만, 원수의 도시가 회개하여 구원받는 일은 불의하게 느꼈습니다. 요나서 4장은 니느웨의 회개보다 요나의 마음을 더 깊이 다룹니다. 하나님은 박넝쿨과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통하여 요나의 좁은 마음을 드러내시고, 마지막에는 하나의 질문을 남기십니다. “내가 어찌 니느웨 그 큰 성읍을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 4:11). 이 질문은 요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악처럼 여긴 요나 (요 4:1) 요나서 4장 1절은 니느웨에 재앙이 내리지 않은 일이 요나에게 크게 싫었고, 그가 성을 냈다고 기록합니다. 원문은 이 일이 요나에게 “큰 악”처럼 보였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악”과 “재앙”에 사용되는 표현은 요나서 3장 10절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재앙이 거두어진 일을 자기에게는 큰 악처럼 여깁니다. 이 언어의 역설은 요나의 마음이 얼마나 뒤집혀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니느웨의 악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습니다 (요 1:2). 하나님은 그 악을 심판하시기 위해 요나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니느웨가 악에서 돌이키...

요나서 3장 묵상과 강해 니느웨의 회개

요나서 3장 전체 강해|말씀 앞에서 돌이킨 큰 성읍 서론|한 사람의 순종과 한 도시의 회개 요나서 3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니느웨라는 큰 성읍 전체가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재앙을 거두시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1장에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2장에서 그는 물고기 뱃속의 깊음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3장에서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갑니다. 그러나 요나서 3장의 가장 놀라운 인물은 요나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 성읍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 선포를 듣고 믿음과 회개로 응답합니다. 왕부터 백성까지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외적인 종교 행위만 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을 보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요나서 3장은 심판의 말씀이 왜 필요한지,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죄인에게 어떻게 응답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또한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말씀하시고, 자신의 백성을 통하여 이방 세계에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긍휼을 증언합니다. 두 번째로 임한 하나님의 말씀 (요 3:1) 요나서 3장은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요 3:1). 이 한 문장은 하나님께서 회개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깊은 은혜의 선언입니다. 요나는 첫 번째 말씀을 받았을 때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명을 피했고, 그 결과 폭풍을 만났으며, 바다에 던져지고 물고기 뱃속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요나는 선지자의 자격을 잃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이 그 말씀을 피했고, 자신의 불순종으로 다른 선원들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죄를 가볍게 덮으신 것이 아니라, 폭...

요나서 2장 전체 강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요나서 2장 전체 강해|깊음에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다 서론|도망자의 기도가 시작되는 자리 요나서 2장은 큰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했고, 폭풍 가운데서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고, 죽음의 바다 속에서 그를 보존하셨습니다 (요 1:17). 물고기 뱃속은 요나에게 가장 어두운 자리였습니다. 그는 자유를 잃었고,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자신이 스올의 뱃속과 산의 뿌리까지 내려간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깊음에서 요나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망했지만, 이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기도합니다. 요나서 2장은 고난을 아름답게 꾸미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의 결과와 무력함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기도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실패보다 깊으며,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속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깊음에서 건지신 뒤, 다시 순종의 자리로 보내십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한 요나 (요 2:1) 요나서 2장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요 2:1). 이 짧은 문장은 요나서 전체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1장에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듣고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폭풍이 일어났을 때에도 그는 배 밑창에서 잠들어 있었고, 이방 선장이 그에게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권할 때에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요 1:5-6). 그러나 이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모든 길이 막힌 자리에서 비로소 그는 하나님을 부릅니다. 물고기 뱃속은 요나가 피하고 싶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자리였습니다. 배를 타고 멀리 갈 수도 없고, 깊이 잠들어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으며, 자신의...

요나서 강해, 도망가는 요나, 쫓아가시는 하나님

도망가는 요나, 쫓아가시는 하나님|요나서 전체 강해 서론|도망치는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긴 이야기 요나서는 네 장으로 짧지만, 인간의 완고함과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 주는 선지서입니다. 이 책의 표면에는 한 선지자의 도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시지만, 요나는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향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하여 배를 타고, 폭풍을 만나며, 바다 깊음과 물고기 뱃속까지 내려갑니다. 그러나 요나서의 더 깊은 중심에는 도망치는 요나보다 더 멀리, 더 깊이 쫓아가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폭풍을 보내시고, 물고기를 예비하시며, 다시 말씀하시고, 박넝쿨과 벌레와 동풍까지 사용하셔서 요나의 마음을 다루십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향해 가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요나를 향해서도 가시는 분입니다. 요나서는 불순종한 선지자를 비난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도망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불편한 사명을 피하고,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은혜가 임하는 것을 불편해하며, 하나님의 긍휼보다 자신의 상처와 판단을 더 크게 붙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치십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과 다시스로 향한 요나 (요 1:1-3) 요나서의 첫 장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 1:1-2). 니느웨는 앗수르와 연결된 큰 성읍입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과 주변 민족에게 위협과 공포를 주었던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에게 니느웨는 단순히 먼 이방 땅이 아니라, 자기 민족을 위협할 원수의 세계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다시스로 도망합니다 (요 1:3). 다시스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중해 서쪽 끝 너머의 먼 땅으로 생각하던 지역입...

요나서 묵상, 원수를 사랑하는 법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어디까지 가능한가|요나서의 도전 서론|니느웨를 사랑하라는 명령의 무게 요나서의 가장 어려운 지점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와 연결된 큰 성읍이었고, 앗수르는 이스라엘과 주변 민족에게 두려움과 폭력을 안겨 준 제국이었습니다. 요나에게 니느웨는 단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아니라, 자기 민족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원수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나에게 그곳으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의 악을 보셨고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요 1:2; 3:4). 동시에 하나님은 그 성읍이 회개하여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요나는 이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니느웨가 구원받는 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요 4:1-2). 예수님께서도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5:44). 이 말씀은 아름답지만, 실제 상처와 폭력, 배신과 불의 앞에서는 매우 무겁게 다가옵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악을 용서하고 잊어버리라는 말일까요? 위험한 관계로 다시 돌아가라는 말일까요? 요나서는 하나님의 긍휼이 원수를 향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면서도, 그 긍휼이 결코 죄와 폭력을 가볍게 여기지 않음을 함께 가르칩니다. 원수 사랑은 악을 선하다고 부르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향해 무조건 평안을 선언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말씀하셨고, 요나를 보내어 심판을 경고하게 하셨습니다 (요 1:2; 3:4). 니느웨 왕도 모든 사람이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야 한다고 명합니다 (요 3:8). “강포”는 폭력과 억압, 착취와 해악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의 강포를 보셨고, 그 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긍휼을 베푸신 이유는 그들의 폭력이 괜찮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더 이상 그 강포를 계속하지 않아야 했...

요나서 4장 강해

나의 긍휼보다 하나님의 긍휼이 더 크다|요나서 4장 서론|선지자의 분노와 하나님의 마지막 질문 요나서 4장은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 뒤, 요나가 크게 분노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요나가 처음 다시스로 도망한 이유는 니느웨의 회개 가능성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롭고 자비로우셔서 그들을 용서하실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가 원수의 성읍에 임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노한 요나에게 박넝쿨과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통해 그의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요나는 하루 만에 자랐다가 사라진 박넝쿨 하나는 아까워하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사는 니느웨에는 긍휼을 품지 못합니다. 요나서 4장은 끝내 요나의 대답을 기록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질문을 독자에게 남겨 둡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타인에게는 그 은혜가 흐르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의 완고함을 비추며, 하나님의 긍휼이 인간의 판단과 경계를 얼마나 넘어서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불편해하는 요나의 분노 (요 4:1)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요 3:10). 그런데 그 일은 요나에게 “크게 싫었고” 그는 성을 냈습니다 (요 4:1). 이 표현에는 의도적인 언어의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요나서 3장에서 하나님은 니느웨의 “악”을 보셨고, 그들이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긍휼을 오히려 악한 일처럼 여기며 분노합니다. 히브리어 라아 (רָעָה)는 악, 재앙, 해로움이라는 넓은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니느웨의 악도 라아 로 표현되고, 하나님께서 내리지 않으신 재앙도 같은 계열의 표현으로 말해집니다. 그런데 요나는 재앙이 내리지 않은 일을 자기에게 큰 “악”처럼 느낍니다. 이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뒤집혀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긍휼을 베푸신 일이 요나에게는 견딜 ...

요나서 3장 강해

말씀 앞에서 돌이킨 큰 성읍|요나서 3장 서론|두 번째 말씀과 니느웨의 회개 요나서 3장은 물고기 뱃속에서 건짐을 받은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부르심을 거역했던 요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니느웨로 보내십니다. 요나는 এবা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큰 성읍 니느웨에 들어가 심판을 외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선포를 듣고 하나님을 믿으며, 왕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습니다. 그들의 회개는 종교적 감정에 머물지 않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돌이키는 삶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보시고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십니다. 요나서 3장은 죄인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말씀의 능력, 그리고 심판의 경고 안에 감추어진 회복의 길을 보여 줍니다. 두 번째로 임한 말씀과 다시 세우시는 은혜 (요 3:1-2) 요나서 3장은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요 3:1). 이 한 문장은 요나서에서 가장 큰 은혜의 선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을 듣고도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폭풍을 만났고 바다에 던져졌으며, 큰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 같은 시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보면 요나는 선지자의 자격을 잃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폐기하지 않으십니다. “두 번째로”라는 표현은 단순히 명령을 반복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회복의 은혜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실패를 모르지 않으셨고, 그의 불순종을 가볍게 여기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징계로 끝내지 않으시고, 회개한 요나에게 다시 말씀을 맡기십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요 2:9). 이제 그는 자신이 경험한 구원을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참된 회개는 감동적인 기도로 끝나지...

요나서 2장 강해

깊음에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다|요나서 2장 서론|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감사의 기도 요나서 2장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고, 인간의 눈으로 보면 죽음에 삼켜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물고기 뱃속은 요나의 무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기도의 방이 되었습니다. 이 기도는 고통을 호소하는 탄식으로 시작하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지셨다는 감사와 확신으로 나아갑니다. 요나는 깊음과 스올, 산의 뿌리와 구덩이라는 죽음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다시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고백합니다. 마침내 그는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요나서 2장은 도망치는 선지자가 하나님께 붙잡힌 자리에서 다시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또한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귀는 열려 있으며,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복음의 진실을 증언합니다. 물고기 뱃속이 기도의 자리가 되다 (요 2:1) 요나서 1장의 마지막에서 큰 물고기는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삼켰습니다. 요나서 2장은 그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라고 시작합니다 (요 2:1). 이 짧은 문장은 요나서 전체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요나는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폭풍이 일어났을 때에도 그는 배 밑창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방 선원들이 각자의 신에게 부르짖고, 선장이 요나에게 그의 하나님께 구하라고 권할 때도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모든 도망길이 막힌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즉시 육지로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물고기 뱃속이라는 깊고 어두운 곳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그곳은 요나가 자신의 불순종과 무력함을 외면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바다 위에서는 배를 타고 도망할 수 있었고, 배 밑창에서는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뱃속에서는 달아날 길도, 의지할 사람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방법...

요나서 1장 강해

도망치는 선지자와 바다의 하나님|요나서 1장 서론|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도망 사이에서 요나서 1장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시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고 폭풍을 만나 큰 물고기에게 삼켜지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이 장은 단순히 불순종한 요나가 벌을 받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원수의 도시에도 관심을 가지시며, 바다와 바람을 다스리시고, 도망치는 선지자와 두려움에 떠는 이방 선원들을 동시에 붙드시는 이야기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배 밑창에서 잠든 선지자보다 이방 선원들이 더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피한 요나를 통하여 오히려 이방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게 됩니다. 요나서 1장은 인간의 좁은 마음보다 크신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을 넘어 회개와 생명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깊이 드러냅니다. 원수의 성읍에도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 (요 1:1-2) 요나서는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요 1:1). 선지자의 사명은 자신의 감정이나 시대적 계산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임하고, 그 말씀에 응답하는 것이 선지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고 명하십니다 (요 1:2). 니느웨는 훗날 앗수르 제국의 중심 도시가 됩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에게 두려움과 적개심의 대상이었던 나라입니다. 폭력적 정복과 잔혹한 통치로 악명 높았던 강대국을 향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신다는 사실은 요나에게 매우 불편한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단지 먼 이방 땅으로 가라는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을 위협할 원수의 도성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의 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악은 개인의 마음속에만 머무는 문제가 아닙니다. 폭력과 탐욕, 교만과 억압, 약자를 짓밟는 제도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