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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묵상, 요나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의 표적 요나의 이야기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다 요나서는 한 선지자의 도망과 회복, 니느웨의 회개와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 주는 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나서를 단지 과거의 흥미로운 사건으로만 읽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하시며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2:39). 이 말씀은 요나가 곧 예수님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요나는 불순종하여 바다에 던져진 죄 많은 선지자였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죄 없으신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의 이야기 속에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모형, 곧 예표를 담아 두셨습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가 다시 땅으로 나왔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일을 비추는 표적이 되었습니다 (마 12:40). 요나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에게 “누가 요나보다 크신가”를 묻게 합니다. 그 답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요나보다 크신 선지자이시며, 죽음의 깊음에서 참된 생명을 가져오신 구주이십니다. 표적을 요구하는 세대와 예수님의 대답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 12:38).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보았고, 병든 자가 고침 받고 귀신이 쫓겨나는 일을 목격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기 위해 표적을 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고 자신들이 정한 방식으로 증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라고 말씀하시며, 요나의 표적을 제시하셨습니다 (마 12:39). 여기서 ‘음란한’이라는 표현은 단지 성적인 타락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을 붙드는 영적 배교를 포함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자신보다 눈에 보이는 증거와 자기 욕망을 만족시킬 기적을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가장 결정적인 표적은 화려한 기적의 반복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고, 죽음은 끝이라고 말...

마태복음 28장 강해 부활하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 두려움을 기쁨으로 바꾸시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부르시다 마태복음 28장은 복음서의 마지막 장이자, 십자가 죽음 이후 부활의 아침을 선포하는 장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무덤을 보러 갔다가 천사의 증언을 듣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경비병들은 두려움에 떨고, 종교 지도자들은 거짓말로 부활의 소식을 막으려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은 사람의 봉인과 감시로 가둘 수 없습니다.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으로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성도는 이 본문 앞에서 부활을 단지 과거의 기적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복음의 능력으로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마태복음 28장을 통해 부활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 사명, 임재의 약속을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빈 무덤과 천사의 증언, 죽음이 생명을 가둘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8장은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이라는 시간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안식일은 끝났고, 새 날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이 시간은 단순한 하루의 시작이 아닙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옛 창조의 질서가 지나가고 새 창조의 아침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어둠 가운데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죽음의 어둠을 뚫고 새 생명의 빛이 비칩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갑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했고, 장사되신 자리도 보았습니다. 그들의 발걸음은 부활을 기대한 확신에 찬 걸음이라기보다, 사랑 때문에 무덤을 찾는 슬픈 충성의 걸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슬픔으로 찾아간 자리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생명의 소식을 들려주십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습니다. 예수님이 돌이 굴려졌기 때문에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돌은 예수님을 나오게 하기...

요한복음 묵상, 11:17-11:2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묵상 [11:17-11:27] 서론 요한복음 11장은 요한복음의 “일곱 표적” 가운데 마지막 표적(나사로를 살리심)을 통해, 예수님이 단지 병을 고치시는 분이 아니라 사망을 이기시고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주 이심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표적을 단순한 기적 서사로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11장 전체는 매우 치밀한 구조를 갖고 있고, 그 구조의 중심에 11:23-27이 놓입니다. 100주년주석은 11:1-44의 병행 구조를 제시하면서, (aa) 예수의 오심(11:1-19), (bb) 마르다가 맞이하러 나옴(11:20-22), (cc) 예수의 선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11:23-27), (b’b’) 마리아의 만남(11:28-32), (a’a’)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옴(11:33-44)으로 전개된다고 정리합니다. 즉, 나사로의 부활 자체가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요한이 진짜로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핵심은 예수님의 자기계시—“나는 부활이요 생명”—과 그 앞에서 터져 나오는 신앙 고백(마르다의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11:17-27은 바로 그 중심을 향해 들어가는 문턱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는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었습니다(11:17). 이미 마을은 조문객으로 가득했고, 슬픔은 ‘사건’이 아니라 ‘공기’가 되어 집 안에 머물렀습니다. 이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집에 남아 있습니다(11:20). 같은 슬픔 속에서도 사람의 방식은 다릅니다. 어떤 이는 밖으로 나가고, 어떤 이는 방 안에 머뭅니다. 믿음도 그러합니다. 어떤 믿음은 질문을 들고 주께 나아가고, 어떤 믿음은 침묵 속에서 무너져 내립니다. 요한은 그 차이를 판단하기보다, 그 차이 속으로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본문 묵상 1) “나흘”이라는 시간의 무게, 그리고 되돌릴 수 없다는 확정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라”(11:17). 요한이 굳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