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6장 강해: 미련함을 멀리하고 말과 마음을 지키는 지혜

잠언 26장 강해: 미련함을 멀리하고 말과 마음을 지키는 지혜

잠언 26장은 사람의 삶과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몇 가지 모습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미련한 사람, 게으른 사람,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 남의 말을 퍼뜨리는 사람, 속이는 말을 하는 사람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훈계를 듣지 않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문제에 함부로 끼어들고, 험담하는 사람은 공동체 안에 갈등의 불씨를 퍼뜨립니다. 속이는 사람은 입술로는 친절하게 말하지만 마음속에는 미움과 악한 계획을 숨깁니다.

잠언 26장은 단순히 “저런 사람을 조심하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는 우리 자신이 그 모습과 닮아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미련함은 쉽게 발견하지만 자신의 미련함은 잘 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게으름은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영적 태만은 합리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언 26장은 사람을 판단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자신을 살피기 위한 거울입니다.

1. 미련한 자에게 영광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잠언 26장 1절

여름에 눈이 내리거나 추수 때에 비가 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맞지 않습니다. 특히 추수할 때 내리는 비는 곡식을 상하게 하여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혜와 인격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영광과 권력을 주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 사람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까지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세상은 능력과 말솜씨, 인맥과 성과만 보고 사람을 높이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사람에게 지혜와 성품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실력은 있지만 정직하지 않고, 영향력은 있지만 훈계를 듣지 않으며, 권한은 있지만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 권력은 위험한 도구가 됩니다.

교회에서도 직분과 권위는 명예를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더 많이 섬기고 더 무겁게 책임지기 위한 자리입니다. 영적인 성숙 없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교만해지기 쉽고, 자신의 판단을 하나님의 뜻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성도는 높은 자리를 구하기 전에 그 자리를 감당할 성품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먼저 숨은 자리에서 충성과 겸손을 배웁니다.

2. 이유 없는 저주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잠언 26장 2절

사람의 악한 말과 저주는 마음에 큰 두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비난하거나 실패하기를 바라면 그 말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처럼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유 없는 저주는 목적지 없이 날아가는 새와 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사람의 악한 말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성도의 삶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오해하고 모함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정당한 비판이 있다면 겸손히 들어야 합니다. 모든 책망을 “까닭 없는 저주”라고 여기며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자신의 삶을 살피고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소문이나 악의적인 말 때문에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필요한 해명과 책임 있는 대응을 하되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사람의 평가가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3. 미련함은 훈계를 거부하는 완고함입니다

잠언 26장 3절은 말에게는 채찍이 필요하고 나귀에게는 재갈이 필요하며,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사람을 폭력적으로 다루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미련한 사람이 말로 주어지는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선택이 가져오는 아픈 결과를 통해 배울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훈계를 들어도 바꾸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항상 환경과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양심, 부모와 배우자,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우리를 권면하십니다. 그 부드러운 경고를 계속 무시하면 더 고통스러운 결과를 통해 배우게 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고난을 겪기 전에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실패한 후에야 깨닫기보다, 말씀의 경고를 듣고 미리 돌이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4. 미련한 자에게 대답할 때는 지혜로운 분별이 필요합니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잠언 26장 4~5절

이 두 구절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4절은 미련한 자에게 대답하지 말라고 하고, 5절은 대답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분별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어떤 논쟁은 대답할수록 우리도 상대방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가게 합니다. 조롱과 비난으로 가득한 대화에 똑같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진리를 지키려다가 오히려 미련함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럴 때는 침묵하고 물러나는 것이 지혜입니다.

반대로 거짓과 어리석음이 진리처럼 퍼지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면 분명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아무도 바로잡지 않으면 미련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지혜라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를 감정대로 결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을 통해 진리가 세워지고 사람이 보호될 수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논쟁이라면 멈추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거짓을 바로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사랑과 진실로 말해야 합니다.

5. 미련한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면 고통이 따릅니다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잠언 26장 6절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 중요한 메시지와 책임을 맡기면, 오히려 맡긴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말을 잘못 전달하고, 자신의 해석을 더하며, 책임을 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충성된 일꾼은 맡은 말을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이익을 섞지 않고, 약속한 일을 끝까지 책임집니다.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도 일을 맡길 때 단순히 재능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의 정직과 충성, 책임감과 겸손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말을 지키지 않고, 자기 유익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사람은 공동체를 위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능력이 아직 부족해 보여도 배우려는 마음과 신실함이 있다면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하나님께서 복음과 사명을 맡길 수 있는 신실한 사람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6. 삶으로 행하지 않는 잠언은 힘을 잃습니다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잠언 26장 7절

다리가 있어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면 걸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미련한 사람이 지혜로운 말을 인용해도 자신의 삶이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말에는 힘이 없습니다.

성경 구절을 많이 외우고 신앙적인 말을 잘하는 것이 반드시 지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용서하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미움을 품고, 정직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한다면 말씀이 조롱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설교자와 교사, 부모와 지도자는 더욱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가르치는 내용과 삶이 다르면 듣는 사람에게 깊은 혼란과 상처를 줍니다.

물론 누구도 말씀대로 완벽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잠언을 장식처럼 입에 두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7. 미련한 사람에게 명예를 주는 것은 위험합니다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잠언 26장 8절

물매는 돌을 날려 보내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돌을 물매에 단단히 묶으면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용하는 사람에게 위험할 수 있습니다.

미련한 사람에게 명예와 권한을 주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그는 그 권한을 공동체를 섬기는 데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세울 때 인기와 외적인 능력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가 권한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비판을 들을 수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권력은 사람의 성품을 새롭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속에 있던 교만과 욕망을 더 분명히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권력을 얻기 전에 섬김과 절제, 책임과 회개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8. 미련함을 반복하는 것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습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잠언 26장 11절

매우 강렬하고 불편한 표현입니다. 죄의 결과를 경험하고도 다시 같은 죄로 돌아가는 미련함이 얼마나 추한지를 보여 줍니다.

사람은 잘못된 선택으로 상처를 받고도 시간이 지나면 그 고통을 잊습니다. 술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도 다시 술을 찾고, 거짓말 때문에 신뢰를 잃고도 또 거짓말하며, 분노 때문에 관계가 깨지고도 같은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후회하는 것과 회개하는 것은 다릅니다. 후회는 결과가 괴로운 것을 슬퍼하는 것이지만, 회개는 죄의 방향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에는 구체적인 변화가 따라야 합니다. 죄의 통로를 끊고, 필요한 도움을 구하며, 잘못된 관계와 습관에 경계를 세워야 합니다.

반복되는 죄가 있다면 자신의 의지만 믿지 말아야 합니다. 믿을 만한 공동체와 목회자, 필요하다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가볍게 만드는 핑계가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 새롭게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9.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것이 가장 위험한 미련함입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잠언 26장 12절

미련한 사람보다 더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지혜롭다고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배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이미 옳고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교만은 성장의 문을 닫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회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신앙 연수가 길고 성경 지식이 많을수록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많이 안다는 사실이 겸손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자기 의가 될 수 있습니다.

참된 지혜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계속 배우려 합니다.

매일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옳다고 확신하는 것 가운데 잘못된 것이 있다면 깨닫게 하소서. 불편한 권면도 들을 수 있는 겸손을 주소서.”

10. 게으른 사람은 핑계를 크게 만듭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잠언 26장 13절

게으른 사람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현실보다 위험을 과장합니다. 밖에 나가 일해야 하지만 사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위험을 살피는 것은 지혜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위험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핑계로 사용합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시작하겠다.”
“시간이 더 생기면 하겠다.”
“실패할 수 있으니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말하며 계속 미룹니다.

완벽한 조건은 오지 않습니다. 믿음은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 후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건강, 재정과 신앙생활에서 미뤄 둔 일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11. 게으름은 움직이는 것 같지만 제자리입니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잠언 26장 14절

문짝은 계속 움직이지만 돌쩌귀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게으른 사람도 침대에서 몸을 움직이지만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바쁘다고 해서 반드시 부지런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로 시간을 가득 채우면서 정작 해야 할 책임은 미룰 수 있습니다.

영상과 인터넷을 보며 많은 시간을 쓰고도 말씀과 기도에는 시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찾지만 실제 행동은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지런함은 단순히 많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중요한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매일 작은 목표를 정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시작하기 싫은 마음이 있어도 먼저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작은 순종이 쌓여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12. 게으른 사람은 작은 수고조차 싫어합니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잠언 26장 15절

먹을 것이 손앞에 있어도 입으로 가져가는 수고조차 귀찮아한다는 과장된 표현입니다. 게으름이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를 보여 줍니다.

게으름은 단순히 쉬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점점 의욕과 능력을 약하게 만듭니다.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더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큰 결심보다 작은 행동이 필요합니다. 오늘 해야 할 전화 한 통, 정리해야 할 서류 한 장, 읽어야 할 말씀 한 단락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긴 기도를 하지 못한다고 아예 기도하지 말아서는 안 됩니다. 짧게라도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한 절이라도 묵상하며 순종을 시작해야 합니다.

13. 게으른 사람은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잠언 26장 16절

게으름과 교만은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행동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충고해도 “내 상황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무시합니다. 실패의 원인을 자신의 태도에서 찾기보다 환경과 다른 사람에게 돌립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변명을 의심할 줄 압니다. 정말 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하기 싫은 것인지 정직하게 묻습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핑계를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주님, 제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변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겸손은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14. 남의 다툼에 함부로 끼어들지 마십시오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잠언 26장 17절

낯선 개의 귀를 잡으면 개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다툼에 함부로 끼어드는 것도 위험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갈등에 호기심을 느낍니다. 어느 편이 옳은지 판단하고 싶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충분한 사실을 알지 못하면서 한쪽 말만 듣고 개입하면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수 있습니다. 화해를 돕기보다 편을 가르고 소문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물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호해야 하거나, 책임 있는 위치에서 중재해야 하는 경우에는 개입해야 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호기심과 자기 과시를 위해 다른 사람의 갈등에 뛰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중재하려면 양쪽의 말을 충분히 듣고, 비밀을 지키며, 자신의 감정보다 진리와 회복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15. 장난이라는 말로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마십시오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음 같으니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잠언 26장 18~19절

사람을 속이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한 뒤 “농담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농담이라는 말이 상처의 책임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조롱과 비꼼은 웃음을 만들 수 있지만 상대방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특히 외모, 가정환경, 실패, 약점과 관련된 농담은 사람의 존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장난을 친 사람은 가볍게 잊을 수 있지만 상처받은 사람은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재미있는가보다 상대방이 안전하고 존중받는가를 생각합니다.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변명하기보다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와 즐거움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16. 험담이 멈추면 다툼도 사라집니다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잠언 26장 20절

불이 계속 타려면 나무가 필요합니다. 다툼이 계속되려면 갈등을 부추기는 말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감정을 과장하며, 한쪽 편을 들어 자극하면 갈등은 계속 커집니다.

반대로 말을 옮기지 않고, 사실을 확인하며, 당사자들이 직접 대화하도록 도우면 다툼의 불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기도 제목이라는 이름으로 험담이 퍼질 수 있습니다. “기도해 달라”고 말하면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 민감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퍼뜨릴 허가증이 아닙니다. 꼭 필요한 사람과 필요한 범위 안에서만 나누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불에 나무를 더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을 끄는 사람입니다.

17.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갈등을 계속 일으킵니다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잠언 26장 21절

어떤 사람은 평화보다 갈등 속에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문제가 없으면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사람들의 말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며, 공동체 안에 편을 만듭니다.

다툼을 좋아하는 마음의 뿌리에는 교만과 인정 욕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욕망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갈등을 해결하는 사람인지, 키우는 사람인지 살펴야 합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더 키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실을 확인하고 화해의 길을 찾도록 돕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진실을 덮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진실을 다루어 관계를 회복시키는 사람입니다.

18. 험담은 마음 깊이 들어갑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잠언 26장 22절

험담은 자극적인 음식처럼 사람의 호기심을 끌어당깁니다. 듣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나 한 번 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는 마음 깊이 남습니다.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았어도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험담은 말하는 사람만의 죄가 아닙니다. 즐겨 듣는 사람도 험담이 계속되도록 힘을 보탭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그분과 직접 이야기해 보셨습니까?”
“제가 이 내용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 말을 전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됩니까?”

지혜로운 귀는 모든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9. 따뜻한 말 속에 악한 마음이 숨을 수 있습니다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잠언 26장 23절

겉은 은으로 빛나지만 안은 값싼 토기일 수 있습니다. 말은 부드럽고 친절하지만 마음에는 미움과 속임수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말로 자신의 진짜 의도를 감출 수 있습니다. 칭찬하면서도 이용하려 하고, 미소를 지으면서도 상대방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만 듣지 말고 삶의 열매를 살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약속을 지키는지, 자신에게 유익이 없을 때도 같은 태도를 보이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도 살펴야 합니다. 겉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미워하고 있지 않은지, 친절을 베풀면서 대가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입술의 표현뿐 아니라 마음의 동기를 보십니다.

20. 미움은 언젠가 드러납니다

잠언 26장 24절부터 26절은 미워하는 사람이 입술로는 자신을 꾸밀 수 있지만 그 마음속에는 속임수가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가 부드럽게 말해도 쉽게 믿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속에 많은 가증한 것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오랫동안 자신의 미움을 감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 마음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미움은 감춘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상처받은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필요한 경계를 세우며, 심판과 복수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용서는 감정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은혜를 붙들고, 미움이 내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주님께 맡기는 과정입니다.

21.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악은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잠언 26장 27절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해 파 놓은 함정에 자신이 빠질 수 있습니다. 악한 계획은 결국 계획한 사람의 삶을 파괴합니다.

거짓말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자신도 신뢰를 잃게 됩니다. 복수하기 위해 악한 방법을 사용하면 자신도 그 악에 물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때때로 늦어 보이지만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심은 것은 결국 거두게 됩니다.

성도는 악한 사람의 방법을 사용하여 악과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과 공정한 절차, 기도와 인내를 통해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며 선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22. 거짓말과 아첨은 사람을 패망하게 합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에게 해를 입힌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잠언 26장 28절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속인 사람을 오히려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자신의 죄와 거짓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아첨은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여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속임수입니다.

참된 친구는 항상 좋은 말만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길을 갈 때 사랑으로 권면하고, 필요한 진실을 말합니다.

지도자는 특히 아첨을 경계해야 합니다. 듣기 좋은 말만 가까이하면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성도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말하고, 칭찬할 때도 과장이나 계산 없이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맺음말: 먼저 자신의 마음속 미련함을 살피십시오

잠언 26장은 미련한 사람, 게으른 사람, 다투는 사람, 험담하는 사람, 속이는 사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읽으며 “내 주변의 누가 이런 사람인가?”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훈계를 거부하면서도 자신을 지혜롭다고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책임을 미루면서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다툼에 호기심으로 끼어들거나, 들은 말을 옮겨 갈등을 키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상처 입히고, 친절한 말 뒤에 계산과 미움을 숨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련함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미련함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지혜로 구원받지 못하고, 완전한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미련함과 게으름, 거짓과 악한 말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마음과 입술, 습관과 관계를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훈계를 기쁘게 듣고, 맡은 일을 성실히 감당하며, 다툼의 불에 나무를 더하지 말아야 합니다. 험담을 멈추고, 속임수 없는 진실한 말로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의 미련함을 판단하기 전에 제 안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보게 하소서. 훈계를 듣는 겸손을 주시고, 게으른 핑계를 버리며 맡겨진 일에 충성하게 하소서. 다툼을 일으키는 말과 험담을 멀리하고,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게 하소서. 입술과 마음이 일치하게 하시며 거짓과 아첨을 버리고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로 오늘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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