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별강해, 마태복음 10장 강해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 잃어버린 양을 향한 왕의 긍휼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의 사역이 제자들의 사역으로 확장되는 중요한 장입니다. 9장 마지막에서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처럼 불쌍히 여기셨고,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10장은 그 기도의 응답처럼 열두 제자가 부름 받고 보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본문의 중심 명제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께 부름 받은 제자는 자기 권세가 아니라 주님의 권세를 위임받아, 잃어버린 양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왕의 권세를 위임받아 잃어버린 양에게 보냄 받는 제자들(마 10:1-15)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십니다. 여기서 “부르다”는 헬라어 프로스칼레오마이(προσκαλέομαι)로, 가까이 불러 자기 곁에 세운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제자는 먼저 일을 맡은 사람이기 전에 주님께 가까이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사역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주님께 붙들리지 않은 사역은 결국 자기 열심이나 자기 이름을 세우는 일이 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십니다. 여기서 “권능”은 헬라어 엑수시아(ἐξουσία)입니다. 이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합법적 권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뜻합니다. 제자들은 스스로 능력이 있어서 보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왕적 권세가 그들에게 위임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역도 본질적으로 주님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교회가 사람을 살리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조직의 힘이나 사람의 재능 때문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열두 사도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베드로라 하는 시몬,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그리고 예수를 판 가룟 유다입니다. 이 명단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열두 제자는 완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격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며, 믿음도 아직 연약합니다. 세리 마태와 가나나인 시몬처럼 정치적·사회적 성향이 크게 달랐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도 한 공동체 안에 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예수를 팔 가룟 유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은 교회가 인간적 완벽함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부르신 주님의 은혜 위에 세워집니다. 하나님은 자격 있는 사람만 골라 쓰시는 분이 아니라, 은혜로 부르신 사람을 빚어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다의 이름은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가 됩니다. 외적으로 사도의 무리에 속하고, 놀라운 사역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참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언약 공동체 안에 있다는 외적 특권은 귀하지만, 그것이 회개와 믿음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시며 먼저 사역의 범위를 정하십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전체는 마지막에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대위임령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제한은 구속사의 순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고, 메시아는 언약 백성 가운데 오셨습니다. 복음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선포되고, 이후 모든 민족으로 확장됩니다.
“잃어버린 양”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양은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하고 목자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참 목자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백성은 흩어진 양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신 참 목자이십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을 그 목자의 마음으로 보내십니다. 사역의 출발은 정죄가 아니라 긍휼입니다. 복음 전도는 우월한 사람이 부족한 사람에게 충고하는 일이 아니라, 은혜를 입은 죄인이 또 다른 죄인에게 왕의 초청을 전하는 일입니다.
제자들이 전해야 할 메시지는 간결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 여기서 “천국”은 하늘이라는 장소만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와 왕권을 의미합니다. “가까이 왔다”는 표현은 헬라어 엥기조(ἐγγίζω)로,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자기 경험담이나 도덕 교훈을 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전할 중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곧 왕이 오셨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회개와 믿음으로 그 왕 앞에 나아오라는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8–9장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사역의 연장입니다. 제자들의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이름으로 일하지 않고, 주님의 권세를 증언합니다. 병 고침과 귀신 축출은 하나님 나라가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있음을 보여 주는 표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들이 마음대로 기적을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권세는 주님께 속하고, 제자들은 그 권세 아래 순종하는 종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복음 사역의 정신이 여기에 있습니다. 은혜는 거래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성경은 복음 사역자가 합당한 공급을 받을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복음을 팔아 자기 탐욕을 채우거나, 은혜를 상품처럼 다루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의 사역은 언제나 “거저 받은 은혜”라는 기억 위에 서야 합니다.
이어 예수님은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모든 시대의 모든 선교 방식에 똑같이 문자적으로 적용하라는 규정이라기보다, 이 특별한 파송 상황에서 제자들이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복음 사역을 위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는 원리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철저히 의존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들은 많은 준비물로 자신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내신 주님을 신뢰해야 했습니다. 신앙은 무책임한 준비 부족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은 준비물보다 주님을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계획과 지혜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인간적 계산이 완벽할 때만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 떠나기까지 거기 머물라고 하십니다. “합당한 자”란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을 뜻하기보다, 제자들의 복음 사역을 받아들이고 평안의 인사를 맞이할 사람을 가리킵니다. 제자들은 집에 들어가며 평안하기를 빌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평안은 단순한 감정적 안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온전함입니다. 히브리어 샬롬(שָׁלוֹם)에 해당하는 이 개념은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질서 안에 회복되는 상태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평안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집이 합당하면 평안이 거기에 임하고, 합당하지 않으면 그 평안이 제자들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결과가 인간의 설득력에만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복음은 참된 평안을 선포하지만, 사람은 그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여기서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시지만,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은 그 거절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고 그 말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분노의 행동이라기보다 증언의 행동입니다. 복음을 거절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하십니다. 매우 엄중한 말씀입니다. 복음을 듣는 특권은 동시에 큰 책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까이 왔는데도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제자와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묻습니다. 제자는 스스로 선택한 종교 활동가가 아닙니다. 주님께 부름 받고 주님께 보냄 받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자기 권세를 가진 기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복음 사역의 목적은 사람의 인정을 얻는 데 있지 않고, 잃어버린 양에게 하나님 나라의 왕을 증언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보다 순종을 앞세워야 하고, 계산보다 은혜를 붙들어야 하며, 정죄보다 긍휼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1–15절은 사명의 시작을 말합니다. 주님은 연약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자신의 권세를 맡기시며,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주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아 쓰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을 통해 자기 나라를 증언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권세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 가까이 머물며, 그분의 긍휼을 품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충성스럽게 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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