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상징] 물과 홍수, 심판과 정결의 수단

 

물과 홍수의 신학: 깊은 혼돈 속 하나님의 손길을 만나다

성경에서 물과 홍수는 고난과 심판, 깊은 두려움과 무질서를 상징하는 동시에, 정결과 구원, 새로운 시작의 상징으로도 등장합니다. 히브리어로 물은 מַיִם (mayim), 홍수는 מַבּוּל (mabbul)이라 하며, 창세기에서부터 시편, 예언서, 복음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사건 속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물은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자연의 절대성을 상징하면서도,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냅니다. 본 글에서는 성경에 나타난 물과 홍수의 고난 상징을 세 주제로 나누어 성경신학적으로 고찰하고, 한 편의 묵상글을 통해 고난을 통과하는 우리의 여정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혼돈과 심판의 상징으로서의 물

성경에서 물은 창조 이전의 혼돈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더라고 말합니다 (창 1:2). 여기서 '깊음'(תְּהוֹם, tehom)은 고대 근동에서 혼돈의 바다를 상징하며, 물은 창조 이전의 무질서와 공포를 내포한 개념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물이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된 대표적 사건입니다. 땅 위의 죄악이 가득할 때, 하나님은 하늘의 창과 땅의 샘을 여시고 물로 온 땅을 덮으십니다 (창 7:11). 홍수(מַבּוּל, mabbul)는 단지 자연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와 정결케 하심을 나타냅니다. 심판이자 동시에 인류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도 종종 물을 고난의 상징으로 묘사합니다. "물들이 내 목까지 찼나이다"(시 69:1), "큰 물이 나를 덮치지 못하게 하소서"(시 69:15)는 표현은, 압도적인 고난 속에서 구원을 간구하는 심정을 잘 보여줍니다. 물은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삶의 위기이며,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정결과 구속의 통로로서의 물

하나님은 물을 심판과 동시에 정결과 구속의 수단으로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그들로 마른 땅을 지나게 하셨고, 그 뒤를 따르던 애굽 군대는 물에 덮여 멸망했습니다 (출 14:21-28). 이 장면은 단지 물리적 구조가 아닌, 하나님의 구원과 원수에 대한 심판이 함께 이루어진 상징적 사건입니다.

또한 율법에서는 정결 예식을 위해 물이 사용됩니다. 이는 죄로 인해 더럽혀진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정결함을 받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레 15:5-11). 이 정결의식은 신약에서 세례로 이어지며, 세례는 물로서 죄 씻음과 새로운 삶의 시작을 상징하게 됩니다 (행 2:38).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도 이러한 상징을 따릅니다. 그는 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물을 통해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마 3:13-17). 그분은 고난의 물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가심으로써, 우리를 위한 생명의 문을 여셨습니다.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는 고난의 물결

물이 고난을 상징할 때, 그것은 단순히 외부의 위기가 아니라 내면의 깊은 절망과 무너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시편 42편에서 시인은 '주의 모든 파도와 큰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시 42:7). 여기서 물은 단지 환경적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감, 영적 침체, 내면의 흔들림을 뜻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도망쳤지만, 폭풍과 물결 속에서 결국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는 물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며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욘 2:3-9). 고난의 물속은 도망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이키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도 물 위를 걸으셨고, 제자들이 풍랑 가운데 있을 때 함께하셨습니다 (마 14:24-27). 고난은 그분과 동행하는 자리이며, 우리가 물결을 뚫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 신앙의 시험장이 됩니다. 물은 우리의 실체를 드러내며, 주님 없이는 한순간도 설 수 없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묵상글] 깊은 물속에서도 들리는 그 음성

인생은 때때로 물에 잠기는 것과 같습니다. 숨이 막히고, 발 디딜 곳이 없으며, 사방이 물결로 둘러싸여 방향을 잃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시간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실, 이해할 수 없는 배신, 길이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제 안에는 침묵과 같은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시편 기자처럼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물들이 내 목까지 찼다고, 나는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깊은 곳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은 들렸습니다. 작고 낮은 울림처럼, 그러나 분명한 위로처럼 제 마음을 감싸 안았습니다.

요나가 물속에서 회개했고, 시인이 물 가운데서 하나님을 노래했으며, 예수님이 물 위에서 저를 향해 손 내미셨던 것처럼, 지금도 그분은 제 삶의 깊은 물속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물은 여전히 두렵고, 고난은 무겁지만,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저는 비로소 숨을 쉽니다. 물이 저를 삼킬지라도, 하나님의 손은 저를 건져내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그분을 믿으며, 깊은 곳에서도 찬양을 놓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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