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상징] 가시, 고난과 은혜

 

가시의 신학: 고난과 은혜 사이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손길

성경에서 '가시'는 인간의 타락 이후 주어진 고난과 고통의 상징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연단하시고 낮추시는 은혜의 통로로도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קוֹץ'(qots)는 '가시, 찔레'를 의미하며 창세기 3장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이는 죄의 결과로 주어진 땅의 저주를 상징하며, 인간의 노동과 생존의 고단함을 반영합니다. 신구약을 통틀어 가시는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히는 현실이자,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루어지는 연단의 도구로 표현됩니다. 본 글에서는 성경에서 가시가 상징하는 신학적 의미와 이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세 가지 주제로 정리하고, 마지막에는 그 의미를 담은 묵상글을 더하여 독자들의 삶의 자리로 적용하고자 합니다.

타락 이후 인간에게 주어진 고난의 상징

가시의 등장은 창세기 3장에서 죄의 결과로 처음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라 하십니다 (창 3:18). 이는 타락 전에는 없었던 현상으로, 인간이 죄를 범한 이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피조세계 역시 저주 아래에 들어갔음을 의미합니다. '가시'(qots)는 인간이 땀 흘려 일해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현실을 상징하며, 동시에 피조세계가 인간에게 반항하게 된 결과입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삶은 피로와 수고, 반복되는 실패와 고통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가시는 단순한 식물의 구조가 아닌, 인간이 감내해야 할 존재적 고난의 표징입니다. 이 고통은 인간의 교만을 꺾고, 자립하려는 시도를 멈추게 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더욱 갈망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하고,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인간의 교만을 꺾는 하나님의 도구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체에 '가시'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고후 12:7). 여기서 '가시'(σκόλοψ, skolops)는 문자적으로는 몸을 찌르는 날카로운 것, 상징적으로는 지속적인 고통이나 약함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를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하며, 자신을 쳐서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 고백합니다. 바울은 세 번이나 이것을 제거해 달라고 간구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고후 12:9).

이 장면은 가시가 단순히 고통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출입구가 됨을 보여줍니다. 가시는 우리가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높이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자를 통해 더욱 빛나게 되는 통로가 됩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자아를 깨고, 하나님의 뜻 앞에 순복하게 됩니다. 이처럼 가시는 교만을 꺾고 은혜를 비추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구속의 길 위에 놓인 고난의 표징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병사들은 그분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웁니다 (마 27:29). 이는 단순한 조롱의 도구가 아니라, 인류의 죄와 고난을 상징적으로 그 머리에 씌운 것입니다. 가시관은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된 가시의 저주를 예수님이 친히 머리에 짊어지심을 나타냅니다. 인류의 타락으로 시작된 고통과 저주의 상징이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서 구속의 도구로 바뀐 것입니다.

가시는 고난의 끝자락에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일치되며, 그 속에서 인간의 죄는 대속되고 구원이 시작됩니다. 가시는 이제 단순히 죄의 상징이 아니라, 구속의 상징으로 새롭게 해석됩니다. 예수님의 머리를 찌른 그 날카로운 가시는 우리를 향한 사랑의 무게이자, 죄인을 대신한 고통의 증거입니다. 가시는 고난이면서 동시에 사랑이며, 고통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표입니다.

[묵상글] 가시의 은혜를 살아가며

제 삶에도 가시가 있습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아픔, 설명할 수 없는 결핍,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반복되는 무기력과 실패가 제 안에 박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때로는 피하고 싶고, 제거하고 싶고, 하나님께 애원하며 울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가시는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가시를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조금씩 느낍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저는 제 힘을 믿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저는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난은 저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했고, 제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알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시관을 떠올릴 때마다, 제가 짊어진 고난이 그분의 고난에 비하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가시조차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의 통로일 수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저를 아프게 하기 위해 가시를 주신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다시 하나님께 붙들리게 하시기 위해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제 저는 그 가시를 껴안고 살아갑니다. 찌르는 통증이 있을 때마다, 다시금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붙듭니다. 고난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음이 제게는 가장 큰 위로입니다. 가시는 저를 낮추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하는 은혜의 징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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