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상징] 바다가 갖는 성경 속 상징성, 혼돈과 심판, 경계선
성경 속 바다의 신학: 혼돈, 심판, 그리고 다스리심의 경계선
바다는 성경에서 단순한 자연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인간 존재의 한계를 드러내는 강력한 상징입니다. 히브리어로 바다는 'יַם'(yam)이라 불리며, 고대 근동 세계에서는 종종 혼돈과 악, 그리고 죽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배경을 수용하면서도, 바다를 하나님의 주권 아래 두신 창조주로서의 권위를 선포하는 방식으로 전개합니다. 본 글에서는 성경에서 바다가 상징하는 주제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성경신학적으로 고찰하고, 마지막에는 묵상글을 통해 고난과 두려움의 바다 위에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혼돈과 악의 상징으로서의 바다
바다는 창세기 1장에서부터 혼돈의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태초의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고 기록되는데, 여기서 '깊음'(תְּהוֹם, tehom)은 바다의 혼돈을 가리키는 상징적 단어입니다. 이 혼돈 위를 하나님의 영(רוּחַ אֱלֹהִים, ruach Elohim)이 운행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바다의 혼돈을 제어하고 계셨음을 보여줍니다.
욥기 38장에서도 하나님은 욥에게 질문하시며 바다를 창조 때 경계 지우신 분이 자신임을 강조하십니다.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내가 그것에 경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욥 38:8-11). 이는 바다가 통제 불가능한 혼돈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복하는 피조물임을 선포합니다.
성경은 바다를 때로는 악한 세력의 거처로도 묘사합니다. 이사야 27장에서는 바다 속에 있는 리워야단, 곧 구불구불한 뱀, 큰 바다 짐승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사 27:1). 요한계시록에서도 바다는 짐승이 올라오는 자리로 묘사되며 (계 13:1), 혼돈과 악의 근원이 되는 심연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이 바다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심판과 두려움의 공간으로서의 바다
바다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자리로 종종 나타납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는 동안, 뒤따르던 애굽의 병거와 마병은 바다에 빠져 멸망합니다 (출 14:27-28). 홍해는 하나님의 구원의 장소이면서도, 동시에 원수의 파멸이 이루어지는 심판의 장소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노래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도다"(출 15:1)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바다를 심판의 무대로 사용하심을 노래합니다.
요나의 이야기에서도 바다는 하나님의 다루심이 임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도망치는 요나는 큰 폭풍을 만나고, 바다에 던져진 후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합니다 (욘 1:15-2:9). 바다는 그에게 하나님의 심판이자 동시에 회복의 전환점이 된 장소였습니다. 물은 심판의 강도만큼이나 깊은 하나님의 긍휼을 품고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종종 바다의 두려움을 묘사하며, 그것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합니다. "큰 물이 나를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깊은 물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소서"(시 69:15). 바다는 인간의 연약함과 무기력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배경이며, 그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창조와 구속, 그리고 종말의 새로운 시작
바다는 고난과 혼돈, 심판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와 구속을 위한 배경으로도 등장합니다. 시편 77편은 하나님이 바다를 지나가시며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는 장면을 회상합니다. "바다가 주를 보았고…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으며 주의 발자취는 알 수 없었나이다"(시 77:16-19). 바다는 하나님의 백성이 통과하는 구속의 여정이며, 믿음으로 걸어야 하는 시험의 장소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으심으로, 제자들에게 두려움을 넘어선 믿음을 가르치십니다 (마 14:25-27). 풍랑은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가운데 계셨고, 바다는 그분의 발 아래에 있었습니다. 바다는 시험의 무대이자, 그리스도의 주권을 확인하는 장소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다시는 바다가 없더라"(계 21:1)는 선언이 등장합니다. 이는 문자적 해양의 소멸이 아니라, 혼돈과 두려움, 악의 근원이 제거된 새 창조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하는 깊음은 없고, 오직 하나님과의 완전한 평화만이 존재하는 그날을 향한 약속입니다.
[묵상글] 바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저는 삶의 여러 순간마다 바다를 마주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끝을 알 수 없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으며, 어느 순간 거센 파도가 몰아쳐 방향을 잃게 만드는 바다 같은 현실 앞에서 두려움과 무력함을 경험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상실, 관계의 깨어짐, 내면의 혼란이 몰려올 때, 저는 자주 제 자신이 작은 배 하나처럼 바다에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으셨다는 사실이 제 마음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분은 바다를 마주하신 것이 아니라, 그 위를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처럼 저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니라. 그 말씀은 바다를 잔잔하게 만드는 능력보다도 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삶의 바다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에 계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나는 오늘도 이 바다를 지나갈 수 있습니다. 바다는 나를 삼키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건지시는 분입니다. 바다는 두렵지만, 그분의 손은 더 크고 깊습니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항해합니다.
댓글
댓글 쓰기